“어제까지 결사반대하던 사람들이, 오늘 아침엔 왜 저렇게 적극적일까요?”
코로나19로 여행업계가 직격탄을 맞던 시기, 조직은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매출은 수직으로 하락했고, 회사는 구조조정을 단행했습니다. 제 이탈리아 매니저도 그때 회사를 떠났고, 팀에서는 아시아계인 저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팀에 새로운 영국인 매니저가 부임했습니다.
문제는 그가 SEO 비전문가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 팀은 구글 검색 결과 상위 노출을 책임지는 SEO 전문가 조직이었습니다. 알고리즘과 데이터, 콘텐츠 구조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팀이었죠. 그런데 새 매니저는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모든 페이지에 회사의 마케팅 메시지를 전면적으로 강화합시다.”
쉽게 말해, 검색 최적화 구조를 일부 희생하더라도 회사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자는 전략이었습니다.
팀원들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그러면 검색 순위가 밀립니다.”
“트래픽이 떨어지면 매출은 더 악화됩니다.”
회의 분위기는 날카로워졌고, 당황한 매니저는 “내일 다시 논의하자”는 말로 자리를 마무리했습니다.
나 홀로 준비한 ‘대안’
회의가 끝난 뒤, 저는 늦은 밤까지 자료를 정리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팀원들의 태도가 조금 아쉬웠습니다. 모두가 ‘전문가로서 맞는 말’을 하고 있었지만, 회사의 절박한 상황을 고려한 제안은 아니었으니까요.
코로나라는 비상 상황에서, 순위 1~2계단을 지키는 것과 회사가 고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
저는 무조건적인 반대 대신,
“SEO를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 메시지를 강화할 수 있는 절충안”을 만들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팀장을 설득할 수 있는 데이터, 리스크 분석, 단계적 적용안까지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벌어진 일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어제까지 강하게 반대하던 동료들이 완전히 다른 태도로 회의에 들어온 것입니다.
“어떤 페이지부터 적용할까요?”
“이 나라는 제가 맡겠습니다.”
“팀장님 방향대로 가는 게 맞겠습니다.”
불과 하루 만에 180도 바뀐 태도.
그 순간, 솔직히 충격이었습니다.
전문가로서의 소신은 어디로 간 걸까?
어제의 논리는 무엇이었을까?
예전에 LG 시절, 미국 에이전시와 일하면서 느꼈던 그 ‘철저한 생존 본능’을 다시 보는 듯했습니다.
상사를 설득할 것인가, 조직의 흐름에 올라탈 것인가
처음에는 실망감이 컸습니다.
하지만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해보니, 그들의 선택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당시는 정상적인 비즈니스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데이터 기반의 장기 전략보다,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 내야 하는 ‘목소리’가 더 중요해진 시기였습니다.
매출이 구조적으로 무너지는 상황에서
구글 순위를 방어하는 것보다,
고객에게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이 더 시급했을지도 모릅니다.
동료들은 그 변화를 본능적으로 읽어낸 것입니다.
설득하고 토론하는 과정보다, 빠르게 조직의 방향에 올라타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 선택이 비겁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글로벌 조직에서 살아남는 또 다른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Kateko’s Insight
내 의견이 옳다고 확신한다면, 상사를 설득하는 과정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는 ‘옳음’보다 ‘속도’가 더 중요한 시기가 존재합니다.
조직이 위기에 놓였을 때,
전문가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과
조직의 생존 속도에 맞추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아직 하루아침에 포지션을 바꾸는 그 유연함을 완전히 체득하지는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빠른 태세 전환이 조금은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몰랐을 때보다 지금은 조금 더 유연해졌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 다시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저는 설득과 순응 사이에서 조금 더 전략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