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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은 날, 나만의 ‘도피처’가 있나요?

화장실 칸 안에서 숨죽여 울어본 적, 있으신가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억울한 일도, 서운한 일도 참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럴 때 비상구 계단으로 가거나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며 화를 삭히곤 하죠. 그래도 안 되면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합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의 초창기 생활은 그런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서러움은 배가 되고 답답함은 끝이 없었죠. 그럴 때마다 저는 회사를 빠져나와 나만의 비밀 장소로 향했습니다. 회사 옆 작은 공원, 혹은 근처의 고요한 성당이었습니다.

나약함이 아닌, ‘나’를 지키는 시간

성당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그곳에서 마음껏 울고,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저를 진정시키고 나면 그제야 다시 사무실로 돌아갈 용기가 생겼습니다.

지금도 홍콩에 가면 그때의 저를 품어주었던 그 성당과 공원을 다시 찾아가 봅니다. 이제는 눈물이 아닌 미소로 그 공간을 둘러보지만, 그때 그곳이 없었더라면 제가 그 긴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우는 제가 나약한 걸까요?

가끔 스스로에게 묻곤 했습니다. “남들은 다 씩씩해 보이는데, 나만 이렇게 나약한 걸까?”

한국에서는 어디서든 당당하고 거침없던 ‘호랑이’ 같았던 제가, 낯선 땅에서는 한없이 작아진 ‘고양이’가 된 것만 같아 자괴감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깨달았습니다. 꼭 호랑이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요. 고양이가 되면 좀 어떻습니까? 조금 울면 또 어떻습니까? 다시 시작하면 그만 인 것을 요.

오히려 진짜 위험한 건 울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누르다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것입니다. 나를 진정시킬 공간을 찾고,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해 회복탄력성이 키우는 것이 좋습니다.


Kateko’s Insight

글로벌 무대에서 당당하게 살아남는 법은 ‘울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울고 싶을 때 안전하게 울 수 있는 나만의 장소를 알고, 울고 난 뒤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는 ‘회복의 근육’을 키우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가 너무 답답했다면,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지 마세요. 잠시 숨을 쉴 공간을 찾고, 그곳에서 오롯이 여러분의 마음을 안아주세요. 그것이 내일을 준비하는 가장 프로다운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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